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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021 2년 간의 짧은 회고

ooeunz 2022. 1. 2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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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을 맞아서 지난 2021년을 회고하고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사실 2021년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2020년 회고글을 따로 적지 않았기 때문에 2년간의 회고를 요약한 글이 되지 않을까 한다.ㅎㅎ

 

후~ 할 말이 정말 많고 어떻게 이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의심에 흐름대로 편안하게 적어볼까 한다.

점심먹고 오피스 돌아가는 길에...

 

이직

2020년 여름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IT기업 중 한 곳에 신입으로 입사했다. 내 블로그에서 가장 잘 팔리는 글 중 하나인 취업 후기 글이 그 주인공이다. 그 후로 내 근황을 블로그에 올리지 않아서 요즘도 가끔 카카오에서 만나자는 비밀 댓글이 달리곤 하는데 사실 난... 이직했다 ㅎ

 

그것도 꽤 오래전에 이직했다. 약 8개월? 쯤 전의 시기였던 것 같다. 전 회사에 있었던 시기로 치자면 약 11개월 정도로 1년을 채우지 않고 이직한 꼴이다.

 

사실 IT 직종이 이직이 잦긴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직을 하진 않는다.

보통은 신입으로 들어가서 3년차 쯤 이직하는 게 국룰이다. 3년차 쯤이 중고 신입과 경력의 경계 선에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이직 시 몸값이 가장 최고치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직이라기 보단 중고신입으로 다시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뒤에서 조금 더 다루겠다)

 

그래서 어디로 이직했냐고?

 

 

TOSS

 

토스는 사실 내게 인연이 있는 회사다. 취준하던 쪼무래기 시기에 처음으로 가본(?) 회사이다.

2019년 말이었던가 그 당시에 속해있던 IT 동아리에 이전에 동아리를 수료하셨던 선배님이 멘토링을 와주신 적이 있다.

당시에 선배님은 카카오에 있다가 토스로 이직을 하셨던 상태였고 토스가 어떤 회사이고 어떤 식으로 취준을 했었는지 세션을 해주셨었다.

 

그리고 세션 마지막 쯔음 연락처를 남겨주시면서 더 궁금한게 있으면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며 시간 되면 회사 구경도 시켜주시겠다고 하시고 멋지게 퇴장하셨다.

 

당시 선배님은 마지막에 그냥 하신 말씀이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옳거니 하고 연락을 드렸고 몇몇 동아리 친구들을 모아서 2019년 말에 토스 견학을 갔었다.

 

그 당시 내 기억에 토스는... 정말 너무 멋진 곳이었다.

업계 최고의 인재들을 모으고 그 인재들에게 최고의 보상을 해주고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2019년 12월의 토스

이건 여담인데... 그 날 얻었던 인사이트를 잊고 싶지 않아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에버노트에 기록해뒀었다.

그리고 보물처럼 나만보고 싶어서 블로그에도 일부러 올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쓴 글을 찾아봤는데... 없어졌다 ㅎ

 

이래서 지식과 인사이트는 나눌수록 배가 되나보다 ^^... 

 

여하튼 그래서 그날 얻었던 인사이트들이 지금에 와서는 어떤 것들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딱 단어로 기억에 남는다.

 

탁월함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탁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저리주저리 내 옛날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그래서 나는 왜 이직을 했을까?

 

머니머니 해도 역시 머니 때문에? 아니다.

 

커리어 때문이었다.

 

 

처음 취직했던 때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암막커튼 쳐진 어두컴컴한 자취방에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한참만에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온 줄도 몰랐던 합격 메일을 보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나도 너무 행복했지만 그렇게 좋아하시던 부모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개발에 미쳐있었다. 습관처럼 말하는 개발왕이 되기 위해 신입으로써는 더할 나위 없는 첫 단추였다.

이 회사에서 성장할 내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짜릿하고 즐거웠다.

 

나는 전체 커리어를 두고 봤을 때 가장 중요한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주니어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건 아직 내가 그 이상의 시기를 겪어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주니어 때 쌓은 경험이 향후 10년을 바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전 회사 생활은 멋진 동료와 워라벨이 가득했지만,

즐겁진 않았다.

 

나는 개발하는데에서 오는 즐거움이 큰 사람이다. 계속 뭔가 탐구하고 싶고 시도해보고 싶었고 그런 내게 워라벨이 가득한 문화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해커톤처럼 일하고 싶었다. 모든 팀원이 하나의 목표에 align 되고, 팀간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공동의 목표에 기여하며 풀리지 않는 문제로 밤새 고민하고 성취감을 맛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끝에 내가 좀 더 나은 엔지니어가 되어 있길 바랬다.

 

나의 전 회사는 분명 좋은 회사였지만 나의 기대감과는 맞지 않는 회사였다.

 

그러던 중 토스에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토스 이야기를 종종 해주는데 이 회사의 문화가 나의 고민에 대해 항상 yes라고만 답하는 것 같았다.

 

내가 토스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토스에서 최종 합격 오퍼를 받았을 때 나는 오퍼레터를 거절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리 높은 보상이어도 지금 누리고 있는 워라벨과 비교하면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분명 개발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그렇게 오퍼레터를 거절하고 일주일이 되기 하루 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편한 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100% 풀 재택. 여유로운 업무량. 나를 서포트해줄 수 있는 다양한 팀원.

오히려 학교 다닐 때보다 여유로운 나의 직장생활은 천천히 나를 잠식시키고 있었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가치가 아니라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취준을 하던 시절 내가 자체 서비스를 하는 회사만을 지원했던 건 평생을 실력으로 나를 증명하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퍼레터를 거절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당시 나를 담당했던 토스 인사 담당자분께 다시 연락을 드렸다.

혹시 지금이라도 다시 입사할 수 있을까요...?

 

 

나의 두 번째 직장

아까 앞에서 내가 중고 신입으로 다시 들어왔다고 말한 이유를 이제 이야기해볼까 한다. 전 직장에서 나는 서버 개발자로 취직했지만 회사를 다니던 중 서버 개발 코드를 짰던 기억이 손에 꼽혔다.

대부분 내부 어드민 툴을 만들거나 인프라와 소통하고 쿠버네티스를 운영하는 업무를 다뤘다. 당시에 했던 devOps의 역할이 지금은 도움이 되고 있지만 처음 토스에 지원했을 때와 업무를 할 때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처음 토스를 들어왔을 때 내 개발 실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자면 취준을 했던 그 시기의 수준이었다.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대부분을 서버 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서버 개발 실력만으론 취준 시절 이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토스에서의 업무는 평탄하지 않았다. 실수투성이에 늘 부족함이 가득했다.

 

나의 토스 적응기는 생존의 연속이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보다 따라가기 급급했고 그때 "내가 개발자를 업으로 삼은 게 맞는 길이었던 것인가?"라는 회의마저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을 때쯤 국민 지원금 서비스 개발에 우리 팀에서 서버 개발을 혼자 맡게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생존 코딩이었지만 내가 맡은 온전한 나의 서비스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개발했다.

그리고 그 서비스는... 대박이 났다.

 

당시 2, 3위 사업자의 수치를 합친 것보다 성공했던 국민 지원금 서비스는 토스 MAU의 새로운 상방을 뚫어냈다.

사업적인 성과 이외에도 내가 만든 서비스를 유저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애증의 마이데이터 서비스.

토스에서 가장 트래픽이 많았던 기존의 계좌 / 카드 조회 서비스를 fade out 시킴과 동시에 마이데이터로 전환해야하는 난이도 높은 프로젝트였다. 토스 전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도가 높은 프로젝트였지만, 우리나라 전체 금융사가 참여하는 국가 단위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무게와 책임감이 남달랐다.

 

개발만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산을 넘으면 새로운 산을 넘어야했다. 그러던 중에 토스의 마이데이터 서비스에 부정적인 여론까지 생기면서 마음까지 힘든 시기를 보내며 서비스 오픈과 운영의 압박감이 날이 갈수록 높아졌던 것 같다. (토스가 잘못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그와 별개로 루머가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ㅠㅠ)

 

그럼에도... 너무 뜨거웠던 시기였다.

눈앞의 테스크를 어떻게 하면 더 나이스 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했다.

 

그 인고의 시간이 나도 모르게 나를 성장시켜갔던 것 같다.

 

마이데이터 서비스 오픈이 끝나고 승건님(울 회사 대표)이 사비로 한우를 사주셨는데 우연히 앞자리에서 술을 같이 마실 기회가 있었다.

술잔을 부딪치면서 승건님이 했던 말씀이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우리가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 (이제 토스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가치

2022년을 맞으면서 내 삶의 새로운 가치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커리어적으로도 고민이 크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지만 커리어가 내 삶의 전부이길 바라진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일을 그만두고 은퇴했을 때 나의 삶을 지켜줄 가치. 그리고 단기간 또는 장기간의 목표를 성취하였을 때 허무함이 아니라 계속해서 삶을 전진할 수 있는 삶의 철학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

 

2018년 여름,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하며 일기에 다짐하듯 적어뒀던 말이 하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예술가로 살자"

 

기억하기로 감성의 영역 한쪽 끝에 있는 예술의 분야에서 반대편 논리의 끝에 있는 공학의 길로 넘어가며 내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일을 하던 그 일에 내 작품을 창조해내듯 나의 정체성을 녹이고 싶었던 의지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최근 나는 이러한 부분을 많이 잃어왔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머리가 컴퓨터처럼 감정 없이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나 삶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많은 부분 상실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때때로 내가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직장인의 모습이 점차 나와 가까워 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여전히 예술가로 살고 싶다. 꿈을 쫓아 살고 있지만 아직 내가 어떤 색의 삶을 살고 싶은지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 2022년은 내 가치를 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끝내 찾아낼 2022년이 몹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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